반남박씨 500년 세거지 ‘샛골(間谷)’ | |||
우리마을탐방[115]문수면 조제1리(샛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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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골 마을전경
하늘과 땅 사이, 산과 구름 사이
1500년대 초 박소장(朴紹張)이 개척
샛골(間谷) 가는 길
시내에서 남산고개를 넘어 농협파머스마켓으로 간다. 적서교 건너 노벨리스코리아에서 좌회전하여 와현방향으로 직진한다. 와현삼거리(옛 문수초, 현 캠프스쿨)에서 무섬방향으로 1.5km 쯤 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조제1리(샛골·잔드리)로 가는 표석을 만나게 된다.
우측 농로를 따라 ‘새낭고개’를 넘으면 우측으로 보이는 마을이 ‘잔드리’이고 좌측 200m 아랫쪽에 있는 마을이 샛골이다. 마을 앞에는 큼직한 돌에 새긴 「반남박씨세장지(潘南朴氏世庄地)」 표석이 보인다.
지난 달 21일 오후 샛골에 갔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마을 사람들을 만나 샛골의 역사와 반남박씨 세거 500년 이야기를 듣고 왔다.
마을의 역사
조제리 지역은 조선 중기 때 영천군 진혈리(辰穴里)에 속했다. 당시 진혈리 속방(屬坊)에는 금광방(金光坊), 유점방(鍮店坊), 검암방(檢巖坊), 탄산방(炭山坊), 조제방(助梯坊), 멱곡방(覓谷坊) 등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 와서 조제리는 적동, 적서, 만방, 승문, 탄산리와 함께 영천군 적포면에 편입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천군, 순흥군, 풍기군이 통합되면서 영주군 문수면 조제리가 되었다가 1980년 영풍군 문수면 조제리,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될 때 영주시 문수면 조제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명유래
1625년 무렵에 나온 최초의 영주지(괴헌고택본)에 ‘조제방’이란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조제리’는 조선 초기 때부터 존재한 마을로 보여 진다.
박찬우(73) 전 이장은 “조제(助梯)는 도울 조(助)자에 사다리 제(梯)자를 쓴다”며 “예전에 분계에서 샛골을 거쳐 잔드리로 가는 길이 좁고 높아서 ‘사다리를 밟듯이 오른다’하여 사다리 제(梯)자를 써 ‘조제리’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국서(87) 어르신은 “‘샛골’이란 잔드리(棧道里)와 분계 두 마을 사이에 있다 하여 ‘사이골’이라 부르다가 간곡(間谷)이란 한자 지명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반남박씨 입향 유래
영주의 반남박씨는 1500년대 초 안동 가구리(佳丘里)에서 이거한 박침(朴琛, 10세손)과 박형(朴珩)의 후손들이다.
사직공(司直公) 침(1465-1549)은 영주로 이거하여 문수면 월호리(원창, 원정골)에 터를 잡았다. 침의 맏아들 승장(承張, 1490-)은 원정골에, 둘째 아들 소장(紹張, 1493-미상)은 조제리 간곡(間谷)으로 이거 했다. 그 후 승장의 아들 담수(聃壽)는 장수면 녹동에, 담수의 증손 내길(來吉)과 처길(處吉)은 고랑골에 터를 열었다.
소장의 둘째 손자 종룡(從龍)은 조제의 동쪽 머럼(遠岩, 탄산리)에 자리 잡았고, 소장의 5대손 수(수)가 1666년 무섬마을을 개척하여 섬계(剡溪)라 이름 했다.
이와 같이 침의 후손들은 원정골을 중심으로 간곡, 머럼, 고랑골 등에 집성촌을 이루어 현재까지 살고 있다.
한편 참판공 형(1479-1549)은 영주동 두서(杜西, 뒷새 현 영광중-서천교 부근)에 자리 잡은 후 가세가 번창하여 원당, 귀내, 한정, 서릿골 등에 뿌리내렸다.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 1517-1586)은 형의 7남 중 여섯째 아들이다.
샛골 입향조 소장(昭張)
샛골을 개척한 소장(1493-미상)의 선고(先考)는 영주 입향조 사직공 침(琛)이고, 조부는 1458년 한양에서 안동 가구리로 낙남한 승지공 숙(숙)이며, 조부는 판관공 병균(秉鈞, 판관공 파조)이다. 소장은 원정골에서 간곡으로 이거하여 마을을 개척했다.
▲ 영모재
소장이 장성하여 원주원씨와 혼인한 후 이곳으로 살림을 났다면 151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반남박씨가 간곡에 세거한지는 500년이 조금 넘었다. 채산 권상규가 1938년에 쓴 사직 소장 묘갈명에서 “공은 문장과 덕행이 있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서 “자손이 번성하여 그 수가 수백이며, 과거(科擧)의 공명(功名)과 유업(遺業)이 이어졌다”고 썼다.
▲ 봉은정사
산과 구름 사이의 샛골
샛골은 산 속에 꼭꼭 숨은 마을이다. 입향조 소장이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아마도 난세와 질병으로부터 후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마을 출신 박희서(전 초등학교 교장, 경북불교대학장) 시인은 아래와 같이 고향시를 썼다.
「하늘과 이 땅 사이 산과 구름 사이
흐르는 물소리거나 부드러운 바람 사이
내 고향 두메 간곡동 일고지는 곡조 사이
산 사람 아랫마을 죽은 사람 또 윗마을
소백산 한자락에 서로 묻혀 사는 마을
세월도 가다가 지쳐 주저앉아 사는 마을
푸른 산 솔바람에 둥둥 뜨는 흰구름에
해와 달 밝은 빛이 서로 비친 이 정토에
어머님 십장생 병풍 저절로 두른 학발수(鶴髮壽)에」
마을의 자랑은 숭조(崇祖)
샛골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조상숭배 정신이 투철하다. 마을 위쪽에 정자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운강정과 봉은정사 그리고 영모재다.
이 마을 박승우(86) 어르신은 “분계방향으로 300m 쯤 내려가다가 보면 우측에 추원재가 있다”며 “매년 10월 시제(時祭) 때는 후손 100여명이 참제(參祭)한다”고 말했다.
추원재(追遠齋)는 반남박씨 영주 입향조 침(琛)과 그의 아들 소장(紹張), 손자 인수(麟壽), 증손 익룡(翼龍), 현손 욱(稶)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다. 묘소는 재사에서 약 100m 뒤편 봉양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마을 가운데 자리 잡은 운강정(雲岡亭)은 운강 박익용(朴翼龍, 1541-1597))의 덕행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다. 공은 조년(早年)에 관직(忠義衛 副司直)을 사퇴하고 고서를 즐기며 후진 양성과 수양(修養)에 힘써 참 선비로 추앙받았다.
샛골 사람들
샛골에 갔던 날 운강정 앞 송차숙씨 댁에서 어르신 여러분을 만났다.
영모재 앞에 살고 있는 정인이(85) 할머니는 “샛골은 집성촌으로 반남박씨만 사는 마을”이라며 “예전에는 20가구가 넘게 살았으나 지금은 12가구가 산다”고 했다.
좌중에서 연세가 제일 높으신 임옥희(86) 할머니는 “예전에 살기 어려워 보리밥, 조밥, 감자, 수제비만 먹고 살았는데 지금은 잘 사는 세상이 됐다”며 “박정희 대통령의 통일벼는 보릿고개를 물리쳤다”고 말했다. 장수 가래에서 시집 왔다는 송차숙(79)씨는 “일제 때 운강정 앞에 문수중부초등학교 전신인 문수공립학교 부설 조제간이학교가 있었다.
당시 수(守)자 양(陽)자 시조부께서 부지를 희사하여 학교를 짓고, 젊은이들에게 한학을 가르치셨다. 1943년 학교가 적동으로 이전하게 되자 연판장을 돌리며 반대하다 일본 순사에게 잡혀가 수염이 뽑히는 고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영하(82) 할머니는 “60년 전 마을의 모습은 초가삼간 오두막집이 전부였고, 운강정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며 “주로 담배농사로 자식들 공부시켰다”고 말했다.
손일순(78)씨는 “지금은 버스가 7회 왕복하지만 교통이 불편했다. 영주장 갈 때는 산등을 따라 방석 방향으로 가서 외나무다리를 건너 영주로 갔다”고 했다. 마을에서 ‘새댁’으로 불리우는 이순호(75)·권순자(74)씨는 “지금 도로는 김주영 시장 당시 포장됐다”며 “예전에는 머럼 방향 ‘새낭고개(낭자가 넘던 고개라는 뜻)’를 넘어 걸어서 다녔고, 고갯마루에 주막집이 두 집 있었다”고 말했다.
유봉희(84) 할머니는 “반남인들은 조상을 성심껏 모시는 것이 자랑”이라며 “그 흔적이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고 했다. ‘반남박씨세장지비’를 세운 박일서(朴逸緖, 1938-2000) 초대 종친회장은 1990년 영모재(永慕齋, 고조 正壽)를, 이어서 봉은정사(鳳隱精舍, 증조 興陽)를 건립하였으며, 백부(勝京)와 부(勝烈)의 유고를 찾아 산고집(散稿集)을 편찬하는 등 숭조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간곡은 선비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이다. 조선 때는 수많은 선비를 배출했고, 일제 강점기 때는 독립운동가를, 현대에는 국가의 동량지재(棟樑之材)를 많이 배출했다. 이번 마을 탐방에 도움말씀 주신 이 마을 출신 박헌서 대종중 상임유사, 박찬원 영주석재 대표, 박찬설 미소머금고 대표께 감사드린다.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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