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등지고 넓은 들을 바라보는 전통마을 ‘소룡산’ | ||||||||||||||||||||||||||||||||||||||||||||||||||||||||||||||||||||||||||||||||||||||||||||||||||||||||||||||||||||||||
우리마을탐방[101] 장수면 소룡3리(소룡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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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경 안동권씨가 개척한 마을
장수면 소룡산 가는 길 표석에서 좌회전하여 소룡산으로 가는 길 좌우에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소룡산 사람들이 개척한 들이라고 한다. 500m 쯤 들어가면 경북선 철도건널목을 건너게 되고, 곧이어 중앙고속도로 지하차도를 통과하면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앞에는 400년 수령의 소나무 두 그루가 수문장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고, 경로당 앞에 있는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는 여름이면 무더위 쉼터란다. 지난 19일 오후 소룡산에 갔다. 마을 경로당에서 정재식 이장, 윤기현 전 노인회장, 권오갑 노인회부회장, 박영숙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소룡산의 내력을 듣고 왔다.
소룡산의 역사 1625년 취사 이여빈이 쓴 군지와 1646년 학사 김응조에 의해 편찬된 영천(옛 영주)군지에는 행정구역이 리(里)와 방(坊)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소룡산은 영천군 호문송리에 속했다. 호문송리(好文松里)의 속방(屬坊, 마을)에는 웅곡방(熊谷坊, 곰실), 배탄방(盃呑, 보통골), 소룡산방(小龍山), 후동(後洞), 토계방(兎溪), 며전구(며田句, 호구실), 산미흘(山彌屹, 미울), 화기방(花岐), 기동(基洞) 등 9개 동네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호문면’으로 개칭되면서 호문, 화기, 소룡산 등 3개 동네로 개편됐다. 각종 문헌으로 볼 때 ‘소룡산’은 조선 초기부터 존재해 온 마을로 보여지며, 이 지역의 중심마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주군 장수면 소룡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때 미울, 소룡산, 호구실을 통합하여 ‘소룡리’라 했는데 당시 ‘소룡산에’ 유력한 인물이나 재력가가 있어 소룡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명유래 소룡산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 통틀어 소룡산이라고 하는데 산 이름이 마을이름이 된 특이한 사례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옛적에 마을 뒷산에 용 두 마리가 날아와서 머물다가 큰 용은 대룡산으로 날아가고, 작은 용은 이 마을에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이 ‘소룡산’이 되었고, 마을 이름 또한 ‘소룡산’이 됐다.
마을 뒷산에 용은대(龍隱臺)라는 바위 글씨가 있다. 언제 누가 새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소룡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원로들에 의하면 ‘소룡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용의 형상이라고 한다. 용의 머리는 마을 가운데 두고 용꼬리는 마을 입구 북쪽으로 뻗어있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소룡산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 이라고 믿고 있다.
안동권씨가 개척한 마을 영주시사(榮州市史)에 의하면 「소룡산은 1450년 조선조 문종 때 안동권씨가 개척한 마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안동권씨가 8가구 살고 있다. 요(曜)의 후손들이 영주 성밑, 뒤새, 사례, 평은 미림, 이산 지동 등지에 세거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이 무렵 요의 후손 중 일족이 소룡산에 터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6·25 때 폐허된 마을 소룡산은 6·25 때 소개령이 내려 주민들이 마을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아픈 역사가 있다. 군(軍)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개령을 내렸고, 집들은 모두 철거하거나 불타는 등 소룡산은 폐허의 마을이 됐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호구실, 보통골 등 다른 마을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윤기현 어르신은 “6·25 전쟁이 끝나고 30여 가구만 마을로 돌아왔다”며 “돌아온 사람들은 다시 초가삼간 집을 짓고 마을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소룡리 석탑 마을 앞들을 ‘탑들이’라고 한다. 탑이 있는 들이란 뜻이다. 탑은 마을로 들어오는 길 중간쯤에서 논 건너에 있다. 정재식 이장과 논두렁을 따라 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 탑 주변에 기단석으로 보이는 석재가 누워있고 탑은 1층 몸돌과 지붕돌만 남아있다. 정 이장은 “탑 위쪽에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며 “이 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모두 갈 때는 ‘복원이 아쉽다’는 말을 남기고 간다”고 말했다. 삽과 괭이만 있어도 땅을 파면 다른 부재가 출토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 이장과 논두렁길로 걸어 나오는데 옛 기와장이 발에 차이기도 했다.
국회의원 2명 배출한 마을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에 김해숙(60)씨를 만났다. ‘홍사덕(6선의원) 전 국회의원 고향이 여기가 맞아요?’라는 질문에 김씨는 “저기 용머리 아래에 있는 집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갈 때까지 여기에서 살다가 시내로 이사 갔다”고 알려줬다. 이 마을 출향인 권종갑(92, 부산)씨는 부산에서 재력가라고 한다. 2015년 고향을 방문하여 3백만원을 기부했다고도 한다. 권종갑씨의 아들 권태망(1953년생)씨는 16대(2000년, 한나라) 국회 때 부산 연제구에서 당선됐다. 그는 어릴 적 소룡산에서 살다가 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소룡산에서 국회의원이 2명이나 태어난데 대해 ‘소룡산의 정기를 받아서’라고 믿고 있다. 교육열이 높은 이 마을 사람들은 자녀교육에 힘써 삼성전자연구원, 교육자, 공무원, 경찰 등 각계각층 지도자를 많이 배출한 마을이다.
소룡산 사람들 지금 소룡산에는 27가구에 60여명이 산다. 정재식 이장의 주선으로 마을 사람들 10여명이 경로당에 모였다. 40여 년 전(1978년)에 지은 경로당 이야기로부터 연자방아, 너랫거렁 빨래터, 어릴 적 나무하던 이야기, 선조들이 개척한 소래들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박춘서(74) 할머니는 “경로당을 지을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새마을운동으로 회관을 지었다. 남자들은 벽돌을 쌓고 여자들은 자갈을 머리에 이고 날랐다”면서 “그 뒤에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다”고 말했다. 권영배(69)씨는 당시 시멘트, 철근만 보조 받아 회관을 짓는데 자갈은 풍기 남원천에 가서 직접 주워 왔다는 이야기와 홍사덕 전 의원이 어릴 적 이 마을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박영숙(61) 부녀회장은 “우리마을이 다른 마을과 다른 점은 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라며 “요즘 농촌을 떠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마을은 4-50대 젊은 부부가 여덟집이나 된다”고 했다. 마을의 자랑에 대해 묻자 이인식(66)씨는 “마을의 자랑은 소나무”라며 “화가들이 찾아 와논두렁에 앉아 소나무를 그리기는 모습을 가끔 본다”고 했다. 갈골에서 태어나 소룡산으로 시집 왔다는 송차남(78) 할머니는 “예전에 초가삼간 방 두 개에 12식구 살았다. 신혼방도 없고 시누 시동생 모두 한방에서 잤다”며 웃는다. 김옥늠(60)씨는 “아늑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교통이 불편한 마을이다. 1960년대에는 걸어서 다녔고, 1970년대는 간이역을 이용해 기차로 다녔다. 2회 왕복 시내버스는 2015년 개통됐다”고 말했다. 권오승(52) 새마을지도자는 “우리마을은 선조들이 오랜 세월동안 개척한 수백마지기 논에서 쌀을 많이 생산하는 마을이다. 지금 농촌은 1억 상당 트렉터(100마력)를 사서 대농을 하고 있지만 쌀 1가마에 13만원밖에 안 가니 어려움이 많다. 진정 농촌을 살리는 정책이 아쉽다”고 말했다. <장수면 소룡3리 소룡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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