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제월(光風霽月)의 호반마을 풍기읍 ‘욱금리’ | ||||||||||||||||||||||||||||||||||||||||||||||||||||||||||||||||||||||||||||||||||||||||||||||||||||||||||||||||||||||||
우리마을탐방[91]풍기읍 욱금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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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과 황준량을 모신 욱양서원이 있던 마을 풍기읍 욱금리 가는 길
영주시내에서 국도를 따라 풍기로 향한다. 봉현면 오현회전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순흥방향으로 가다가 동양대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동양대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등두들 마을 앞을 지나면 금계교차로가 나온다. 비로사 방향으로 직진하여 영전고개를 넘으면 호반의 마을 욱금리이다. 영전고개마루에 ‘호반의 마을 욱금리’라는 표석이 있고 이어서 ‘다래숲 가든’이 나타난다. 욱금리는 금계호를 사이에 두고 호수 동쪽에 옛 욱금마(양지마)가 있고 서쪽에 영전마(음지마)가 있다. 욱금리는 최근들어 광풍제월(光風霽月, 신선한 바람과 상쾌한 달) 호반마을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욱금리에 갔다. 다래숲가든에서 전종갑 사장을 만나고, 금호농원에서 백지균 이장과 황두섭 전 이장을 만나 욱금동의 내력과 호반의 마을 이야기를 듣고 왔다.
역사 속의 욱금동 1348년 안축(安軸, 1287-1348)이 지은 죽계별곡에 욱금동이 나온다. 「郁錦洞 在小白山 距郡北十三里 藏高麗忠穆王胎」 ‘욱금동은 소백산에 있는데 군 북쪽 13리에 있다. 고려 충목왕 태를 안치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소수박물관 학술총서 ‘평해황씨 사람들’에 보면 ‘금계종가 풍기정착’편에서 「검교공파 8세 황유정의 삼남 9세 연(연, 1380-1461)이 풍기와 인연을 맺고, 11세 효동과 12세 치(觶 , 1492-1572) 대에 확실히 풍기에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13세 준량(俊良, 1517-1563)이 크게 가문을 일으켰다」라는 기록으로 볼 때 이 무렵(1500년) 평해황씨가 풍기 욱금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풍기군지에 보면 욱금리는 조선시대 때 풍기군 서부면에 속했다고 수록되어 있다.
지명유래 영주시사에는 「금계동 마을 뒤쪽에 있다하여 ‘웃금계’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웃금’ ‘우금’ ‘욱금’으로 부르게 됐다」고 기록했다. 욱금리 본 마을이 된 영전마을은 옛날 ‘영전사(靈田寺)’라는 절이 있어 ‘영전마’라고 부른다.
욱양서원 욱양서원은 1662년(현종 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황(李滉)과 황준량(黃俊良)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 옛 욱양서원에는 영남의 선비들이 수없이 찾아들던 명문 교육기관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욱금이 낳은 선비 황헌 어린 소년으로 관직에 등용되어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에 임용되어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를 지냈다. 순조4년(1910년) 경술국치 후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복관 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끝까지 나가지 않고 욱금에서 강개(慷慨)한 심회를 독서와 시사로 달래며 지냈다. 그는 지역민들에게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정신적 지주로 살다가 향년 98세로 욱금에서 타계했다. 옛 욱금리에는 그가 살던 옛 집터가 그대로 남아있다.
영전사의 내력 황두섭 전 이장의 안내로 영전사지에 올랐다. 주변은 농토로 변했고 절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절터에서 금계호를 내려다보니 마을의 모습이 아담하고 평화롭다.
호반의 마을 욱금리 금호농원 황명희 대표는 “요즘 시내지역은 황사로 뒤덮여 숨쉬기가 힘들지만 금계호 지역은 항상 청명하다”며 “십승지 중 으뜸마을답게 마음껏 숨쉬고 싶은 청정지역”이라고 말했다. 백지균 이장은 “금계호 주변 데크시설이 일부 완공됐고 앞으로 호수를 한 바퀴 돌아오는 산책로와 데크시설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욱금리에는 다래숲가든, 금호농원 등 펜션 8개소가 있다. 이곳에서는 전통산골체험, 황토방체험, 소백산 약재음식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
다래숲 이야기 전씨는 “부친께서 늘 ‘어른을 공경하라’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셨다”며 “선친의 유지(遺志)를 받들기 위해 작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전씨는 해마다 6월이면 지역 내 6.25 참전용사 100명을 초청해 경로연을 베풀면서 ‘경로효친’을 실천하고 있다. 또 전씨의 아들 전도진(31)씨도 선조의 뜻을 받들어 풍기청년회의소 회장, 욱금리 새마을지도자 등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욱금리 사람들 영전마을 우병숙(66) 부녀회장은 “영전마을에는 12가구가 살고 있으며 4집은 도시 사람들이 주말에만 오는 주말주택”이라며 “전망이 좋아 땅값이 비싸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 최선녀(75) 할머니는 “십승지를 찾아온 남편과 한마을에서 결혼했는데 남편이 먼저 갔다”며 “예전에는 감나무가 많았고 감을 팔아 아이들 학비를 마련하는 집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96년에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김창민(57)씨는 반석에 새긴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글씨를 보면서 “광풍제월은 비갠 날의 신선한 바람, 비갠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며 “욱금은 언제나 ‘광풍제월’의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전국을 유람하다 16년 전 영전마을에 정착했다는 이종수(51)씨는 “공기 좋고 인심 좋아 사람살기에 낙원”이라며 “잠자리가 편안해서 평생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북부초에 다녔다는 황선주(38, 평택)씨는 “어릴 적 친구들과 앞 냇가에서 놀던 추억이 떠오른다”며 “그 때는 사람도 많고 친구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마을에 초등학생이 하나도 없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산촌체험 연락처 010-3539-4813/010-3389-4979] 풍기읍 욱금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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