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고서원 추향제 거행
2012.11.2(금) 10:00
단산면 사천1리에 소재한 구고서원은 단종때의 절신 돈암 서한정을 모신 서원이다. 서한정(徐翰廷, 1407~1490)은 조선 초기의 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호는 돈암(遯庵). 아버지는 생원 균(均)이다. 그는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단종(端宗)이 손위(遜位 : 왕위를 사양함)하고 세조(世祖)가 즉위하자 달성에서 가족을 이끌고 소백산(小白山)으로 들어가 은둔(隱遁) 하였다.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고, 구고리사(九皐里社)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돈암일집(遯庵逸集) 1책이 있다.
서한정의 학문에 대한 언급은 많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권득평이 쓴 제문에는 “청아한 절개와 탁월한 행실[淸操卓行]이 있었다.”고 칭찬하고 있다. 가장(家狀)에서도 학문과 관련한 것으로는 “과거를 폐하고, 어버이를 섬김에 효를 다하고 거상(居喪)에서는 정성을 다하여 예에 따라 어김이 없었다. 밤낮으로 단정히 앉아서는 성리의 학문에 마음을 다하였다.”라는 기록 정도가 남아 있다. 이러한 구문을 통해 성리학을 체득하고, 몸소 실천하려 했던 조선 전기 학자의 모습을 서한정에게서도 잘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단종의 폐위와 함께 벼슬길을 접었던 그의 행적은 선비의 고고한 절개와 신하의 충을 실천한 것으로 후대에도 길이 남겨지게 되었다.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어 구고서당(九皐書堂)이라는 현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구고서원 현판과 여러 부속건물의 현판은 책실(冊室)에 보관하였었는데, 근래에는 소수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한다 |
구고서원 상절사/영주시 단산면 사천리
구고서원
상절사(사당)
구고서원 현판
헌관과 제관, 참제원들이 존교당에 모임
서석천 종친회장 인사 및 인터브
상읍례 후 원규 경독하고 있는 모습
경독은 제관 몇사람이 돌려가면 낭독한다.
집사분정/헌관과 집사들을 분정하는 예
인사 및 인터브/서석호 강학당중수추진윈원장
취재진/영주문화유산보존회 서원의 제례 및 음식 연구 취재
진설
상절사 진설의 특징:돈암 선생께서 생전에 미골봉에 올라 고사리를 꺾어드셨다는
유래에 따라 제례 때 고사리를 왼쪽에 차린다고 함
집사분정표 게시
제례의 시작
문외위/헌관과 제관들이 사당 밖에 위치함
홀기에 의거 배위에 오름/배위:절하는 자리
초헌관이 삼상향을 위해 관세위에서 손을 씻음
삼상향/향을 세 번 피워 신을 불러오는 예
초헌례/준소(술보관소)에서 예를 표함
사준이 잔을 채워 봉작에게 전하면 본작이 헌관에게 드리고 헌관은 전작에게 주어
신위전에 올리는 헌작예
축/축관이 축문을 낭독함
축문 내용은 배향인물을 추모하고 정성껏 차린 음식을 많이 드시라는 내용임
삽시정저/숟가락을 밥 가운데에 꽂는 예
아헌례
종헌례
배위 헌관과 제관
음복례/혼헌관이 제사 음식을 먹는 예
망례/제사를 끝마치고 축문과 폐백을 파묻을 때 헌관과 집례가
이를 지켜보는 일을 이르던 말
제례가 끝나고 모두 사당 밖으로 나감
사당 앞에서 기념 촬영
강학당에 모여 음복을 먹음/초헌관 순배로부터 아헌관 종헌관이 순배하여 삼잔을 먹음
좋은 소식 GNπ http://blog.daum.net/lwss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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