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사랑 이야기/영주의 역사&인물

[스크랩] 삼판서 고택 이야기

단산사람 2012. 9. 1. 06:44

삼판서 고택

삼판서 고택은 영주시(榮州市) 구성공원(龜城公園) 남쪽에 세워졌던 고택으로,
380여년 전 풍산인(豊山人) 학사 김응조(鶴沙 金應祖)가 영천군지(榮川郡誌)를 편찬 할 당시,
영천(현 영주) 지역의 유일한 고적(古蹟)이라고 기록한 건물이다.

삼판서 고택은 건축 연대가 언제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처음에는 고려조에서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낸 봉화인 정운경(奉化人 廉義 鄭云敬)이 관직을 버리고 내려와 청렴하게 살았던 집이라 한다.
그의 장남은 조선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三峯 鄭道傳), 차남은 참판 도존(參判 道存), 삼남은 일봉 도복(逸峯 道復)이며,  사위는 평해인(平海人) 공조전서(工曹典書) 미균 황유정(米囷 黃有定)이다.

정운경(鄭云敬)은 이 집을 사위 황유정(黃有定)에게 물려주었는데,
황유정(黃有定)도 병을 이유로 낙향하여 소쇄헌(掃灑軒)이라는 현판을 걸어두고 말년을 이 고택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에게도 삼남 일녀가 있었는데, 장자는 증지평(贈持平) 전(銓), 차남은 문과급제(文科及第) 현(鉉),
삼남은 훈도(訓導) 정(錠)이고, 사위가 현감(縣監)을 지낸 김소량(金小良)이다.
김소량(金小良)도 자식이 삼남 일녀이며, 장남은 문교리(文校理) 증(潧), 차남은 문절공(文節公) 담(淡),  삼남은 통찬(通贊) 홍(洪)이고, 사위는 안동인(安東人) 부호군(副護軍) 권겸(權謙)이다.
김소량(金小良)은 이 집을 차남인 문절공(文節公) 담(淡)에게 물려주었는데,
형부상서 정공(刑部尙書 鄭公), 공조전서 황공(工曹典書 黃公), 이조판서 문절공(吏曹判書 文節公)이 살았다하여  세인(世人)들은 이 고택을 삼판서 고택(三判書 古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구택은 웅장하지는 않았으나 규모가 상당히 큰 건물이었고,
집터도 영천(榮川, 現榮州) 고을에서 소문난 명당(明堂)자리였다고 한다.
현감(縣監) 김소량(金小良)의 21대 손(孫)까지 500여년을 세거(世居)하다가 조선 말기에 주인이 바뀌었고, 1961년 대홍수가 일어나 그 후 도시 확장을 하며 헐리게 되었다.

이 구택은 판서급 5명을 비롯하여 문과 8명, 무과 1명, 소과 2명 등 많은 선비들이 태어나거나 살았던  이 지역의 유서 깊은 집이어서, 복원을 위해 지난 1999년 지역 유림(儒林)에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복원사업을 펼친 결과, 2007년에 16억원의 예산으로 현재의 위치인 서귀대에 정면 7칸, 측면 6칸의 팔작지붕에  口자형 한옥으로 복원 공사를 하여, 2008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지게 되었다.

<제민루와 삼판서 고택>

출처 : 榮州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글쓴이 : 소백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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