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랑/우리마을 탐방

예전에 검둥바우가 있어 검둥골이라 불렀던 ‘흑석(黑石)’

단산사람 2020. 8. 31. 19:06

우리마을탐방[243] 이산면 석포2리 ‘흑석(黑石)’ 탐방일:2019.4.6

흑석사 아미타불, 금성대군의 명복 빌기 위해 조성
진성이씨-단양우씨-전의이씨 순으로 입향·세거지

흑석마을 전경

 

이산면 흑석마을 가는 길
시내 원당로에서 철도건널목을 건너 이산면 방향으로 간다. 영주고-용암대-돗밤실을 지나 조그네재를 넘어 100m쯤 내려가면 도로 우측 산중턱에 거북 형상을 한 검은바우가 흑석이다.

여기서 200m가량 더 내려가다 보면 도로 왼쪽에 보이는 마을이 흑석이다. 지난 6일 오전 흑석마을에 갔다. 이날 마을 앞 정자에서 우경달 마을대표, 김재희 할머니, 이상훈 씨, 지봉금 할머니 그리고 여러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흑석마을
영주는 조선조 태종13년(1413) 경상도 영천군(榮川郡)이 됐다. 1650년경 군(郡)의 행정구역을 면리(坊里)로 정비할 때 이곳은 영천군(榮川郡) 말암면(末巖面) 흑석리(黑石里)라고 했다. 조선말 1896년(고종33) 행정구역 개편 때 경상북도 영천군 말암면 흑석동으로 개편됐다가 1914년 일제 때 영주군 이산면(伊山面) 석포2리(石浦)에 편입됐다. 그 후 1980년 영풍군 이산면 석포2리, 1995년 영주시 이산면 석포2리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흑석(검둥바우)

 

흑석의 유래
옛 사람들은 이 골짝에 ‘검둥바우’가 있어 ‘검둥골’이라 불렀는데 조선 중기 무렵 군(郡)의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이 곳 선비들이 모여 ‘검둥바우’에서 유래하여 검을 흑(黑)자에 돌 석(石)자를 써 흑석(黑石)이라 칭했다고 한다.

우인원((85) 어르신은 “흑석에는 검은바우가 여러 군데 많은데 그중 가장 크고 상징적인 바우가 바로 이 바우”라며 “위에 올라가보면 집채만큼 크고 우람차다”고 말했다.

정순봉(82) 할머니는 “바우 모양이 북(베틀에 딸린 북)을 닮아 ‘북바우’라 부르기도 하고, 옛 어르신은 ‘거북바우’라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흑석사는 절 주변 마을 이름이 흑석(黑石)이어서 흑석사(黑石寺)라 불렀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흑석사’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흑석사 전경

 

우리가 잘 몰랐던 흑석사
흑석사의 역사와 아미타불의 슬픈 사연은 영주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가까이 사는 흑석마을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무명의 절집에는 국보 1점(아미타불 국보282호), 보물 1점, 지방문화재자료 1점이 있다. 이 절에는 오래된 건축물은 없지만 유서 깊은 부처님이 여러 분 있어 다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창건에 대한 역사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부석사를 비롯한 인근의 사찰들처럼 통일신라시대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시대배경을 살펴보면 이 부근에서 출토되어 봉안된 석조여래좌상(보물681호)은 통일신라시대 조성이고, 자연 암반에 새긴 마애삼존불(경북문화재자료 제355호)은 고려시대 것으로 확인되어 통일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근세 역사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절터만 남아 있던 곳에 소백산 초암사에 머물던 상호스님(1895-1986)이 6.25 전 빨갱이들의 약탈과 행패가 심해져 소백산 일원에 소개령(1948년)이 내려지자 초암사의 목재를 옮겨 중창했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가운데)

국보 제282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아미타불이 국보가 된 내력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원래 정암산(井巖山) 법천사(法泉寺)의 불상이라고 하나 어딘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제말엽 이 불상을 우연히 발견한 상호스님은 이 불상을 업고 모실 곳을 찾아다니다가 소백산 초암사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다시 부처님을 업고 다니다가 흑석사에 모시게 됐다고 한다. 1986년 도둑이 들었다. 지금도 흑석사에 계시는 부봉스님이 새벽 예불을 드리려 가보니 불상이 없다.

‘상호 큰스님께서 팔십여리 산길을 직접 업고 온 불상이 아니던가’ 즉시 경찰서와 시청에 연락하고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그날 오후 절 인근에서 불상과 복장유물이 발견돼 수습했다. 지금까지 복장유물의 존재를 몰랐는데 도둑이 복장유물을 세상에 내 놓았다. 이후 문화재청과 학자들의 연구와 고증과정을 거쳐 불상과 복장유물은 1993년 국보 제282호로 일괄 지정됐다.

복장유물

 

복장유물의 비밀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단종과 금성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됐다고 학계에 발표한 동국대 불교미술학과 유근자 교수의 연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초 세조와 단종 그리고 금성대군(1426~1457)과 깊은 관련이 있는 불상이 바로 1458년에 조성된 영주 흑석사 목조 아미타불이다. 이 불상은 단종과 세종의 여섯째 왕자이며 단종의 숙부인 금성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됐다. 이 때 발견된 청색 명주에 쓴 복장기에는 인빈권씨, 효령대군, 왕실종친, 장인, 스님 등 275명의 시주자 이름이 기록돼 있다. 1457년에 세조에 의해 처형된 단종과 금성대군을 위해 그 1주기가 되는 1458년에 금성대군을 아들처럼 보살폈던 태종의 후궁 의빈 권씨가 주도해 만든 불상이다」

샘골 전경

 

단양우씨 흑석 입향 내력
흑석의 단양우씨는 문희공(文僖公) 우탁(禹倬1262-1342)의 후손들이다. 단양우씨 영주 입향조는 우숭려(禹崇呂)다. 그는 안동 예안으로 낙남(落南)했다가 옛 영천의 동쪽 용암대에 터를 잡았다.

후손 우경달(73) 씨는 “우리 선조들은 수백년동안 용암대에서 세거해 오다가 1700년대초 청풍현감을 지내신 치홍(致洪,22세손) 선조님께서 시대가 너무 혼란하고 수상하여 이산면샘골로 이거하셨고, 1850년경 시절이 나아지자 동연(東硏,27세손) 할아버지께서 샘골에서 흑석으로 옮겨 오셨다”며 “단양우씨가 샘골에 정착한지는 300년 전이고, 흑석에 세거한지는 170년 됐다. 1960년대까지는 30여 세대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나 지금은 5집이 산다”고 말했다.

 

우인대(단양인)의 흑석의 노래
1960년대 우인대(禹寅大,해사출신,중등교원)씨가 작사한 흑석가(黑石歌)에는 마을의 모든 것이 잘 나타나 있다. 「1. 검은돌에 꽃이 피어 흑석이 되고 못 위에 변치 않는 동수나무는, 영원히 우리들을 보호하는 듯 힘차게 뿌리박은 노가지나무. 2.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앞산에 보이는 큰 소나무는, 열풍한설 우리 몸 지켜주는 듯 백만년 뿌리박고 있구나. 3. 유구하다 역사는 반천년이며 뒷산에 우리들의 달봉재 빛나니, 보름달 연기 속으로 천만년 잊으리까 흑석의 사랑. 4. 희망의 고개라는 조그네재 저녁빛은 깨끗이 마을을 보고, 삼십여호 백여명에 행복의 기도 억만년 살아갈 맹세는 크다.」고 썼다.

이 마을 이상훈(72) 씨는 “흑석은 처음 진성이씨가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그 뒤 단양우씨, 전의이씨 순으로 입향했다”며 “석연대와 석연지는 진성이씨 문중에서 조성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흑석마을 사람들 남해로 봄꽃관광

 

석연대와 성황대

이남명 씨

나무훈 씨

금은숙 씨

정성희 씨

 

흑석마을 사람들
마을을 360도 감싸고 있는 뒷산줄기 끝에 집채만한 큰 바위와 작은 연못이 있다. 바위에는 석연대(石淵臺)라고 새겼다.

지봉금(91) 할머니는 “예전에 석연대 위에 성황단이 있어 해마다 정월대보름날 자시에 성황제를 지냈다”고 했다. 김재희(87) 할머니는 “남편은 6.25 참전용사로 북한군의 포로 됐다가 포로교환 때 돌아왔다”며 “당시는 모두가 보릿고개를 넘으며 힘들게 살았다”고 했다.

강춘구(82) 할머니는 “마을 앞 느티나무 동산은 경치가 참 좋다. 아이들의 놀이터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고 했다. 신옥주(72) 씨는 “흑석마을은 풍수해가 전혀 없어 해마다 풍년”이라며 “마을 어르신들이 쉴 수 있는 경로당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석연대 옆에 사는 지용하(81)·이남명(79) 어르신은 “20년 전 흑석으로 이사와 산다. 산세가 사람살기에 딱 좋다. 그래서 귀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2년 전 귀촌한 나무훈(59)·금은숙(58) 부부는 마을 어르신들의 눈이 되고 귀가되어 드리니, 어르신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마을 부녀회장을 7년간 하고 지금은 면적십자회 총무를 맡고 있는 정성희(56) 씨는 “마을에는 학식이 높으시고 인자하신 어르신들이 많다”며 “이산면의 모든 마을이 다 선비촌이듯 흑석 또한 선비촌”이라고 말했다. 흑석마을의 내력과 흑석사의 전설에 대해 현장을 직접 안내를 해 주신 우경달 선생과 박명자 님께 감사드린다.

우경달 마을회장

지봉금 할머니

김재희 할머니

우인원 어르신

정순봉 할머니

강춘구 할머니

지용하 어르신

신옥주 씨

박명자 씨

이상훈 씨

 

이원식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