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랑/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천상(川上) 위 천상(天上)의 절집 진월사(陳月寺) [3]

단산사람 2020. 3. 4. 14:39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2020.1.2)

[3] 천상(川上) 위 천상(天上)의 절집 진월사(陳月寺)


평은 용혈 영주댐 앞산 구름 위로 보이는 절집
676년 의상대사 창건, 1720년 설신대사 중건
눈앞에 펼쳐진 천 겹의 봉우리들이 장관(壯觀)

영주댐에서 바라본 천상의 절집 진월사

진월사 가는 길

진월사는 학가산 북편 평은면 용혈리에 있는 절이다. 영주댐에서 남쪽방향으로 보면 산 정상 능선 아래로 어렴풋이 보이는 형체가 진월사다. 진월사는 내성천 위에 있어 ‘천상(川上)의 절집’이라 하기도 하고, 높은 산꼭대기 구름 위에 있어 ‘천상(天上)의 절집’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교통이 좋아져 영주댐 순환도로-영주댐-용혈1리-납들(直谷,나비들)마을-32구비를 돌아 차로 절집까지 갈 수 있지만, 1999년 이전에는 걸어 다니는 오솔길밖에 없었다.

이 절 40년 지기 전분향(69) 신도는 “예전에는 기차로 평은역까지 와서 외나무다리 건너 금광마을로 들어간다. 마을길을 돌아 한 고개 두 고개 넘으면 놋점(鍮店,현 오토캠핑장)마을이다. 여기서부터 급경사 오르막길을 지그재그로 올라야 했다. 머리에 인 공양미 두어 되가 왜 이리도 무겁게 느껴지는지. 콩죽 같은 땀을 쏟아야 진월사 부처님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월사 초입 직곡계곡에 있는 용추(龍湫,용혈)

용혈리(龍穴里) 진월사(陳月寺)

진월사가 위치한 평은면 용혈리는 삼국 때는 고구려의 날이군(捺已郡)에, 창건 당시는 통일신라의 날령군(捺靈郡)에 속했다. 조선 초 행정구역 정비 때 영천군(榮川郡) 진혈면(辰穴面) 유점리(鍮店里), 조선말 진혈면 용혈리(龍穴里), 일제 때 평은면 용혈리(龍穴里)가 됐다.

향토사학자 장태홍 선생은 진월에 대해 “다른 곳은 달이 져도 이곳은 더 늦게 달이 저물어 오래머무를 진(陳)자에 달 월(月)자를 써 진월(陳月)이 된 게 아닌가 짐작된다”고 했다.

진월사 혜정(慧靜) 스님도 “진월은 달(月)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며 “오랫동안 달을 볼 수 있어 펼칠 진(陳)자에 달 월(月)자를 써 진월이 된 것 같다. 진월의 유래를 확인하시고 싶은 분은 진월사로 오시면 금방 알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진월사가 터 잡은 곳은 행정구역상 용혈1리 이다. ‘용혈’이란 진월사 초입 직곡계곡에 용(龍)의 형상을 한 석혈(石穴)에서 유래하여 용 용(龍)자와 구멍 혈(穴)자를 따 용혈(龍穴)이 됐다고 한다.

 

법당에서 예불 드리는 혜정 스님
진월사 무량보전
진월사 전각들
진월사에서 본 천 겹 소백산 봉우리

천년 고찰 진월사

진월사는 신라 문무왕(재위661-681) 때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의상이 부석사 창건 당시 꿈에 “남쪽 학가산 자락의 학이 봉황산으로 날아오르는 형국이니, 그 터에 절을 먼저 지으면 부석사를 건립하는데 장애가 없을 것이니라”하여 이곳에 먼저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에 진월사 창건을 부석사 창건과 같은 해인 676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창건 후 조선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다가 1720년(숙종46) 설신(雪信)과 계원(戒員)이 무량보전을 중건한 기록이 나온다. 이 때 절의 주불을 지장보살에서 아미타삼존불로 바꿔 봉안하고, 향노전(香爐殿)도 신축했다. 1758년 체붕(體鵬) 등이 법당을 중수하고, 심원각(心遠閣)을 신축한 후 칠성탱화를 봉안했다. 1797년(정조21) 계문(戒文)이 중수하고, 1807년 시임(時任)과 정신(定信)이 중수했다. 1891년에 희민(曦玟)이, 1919년 보정(普貞)이 중수했다. 1949년 소백산지역 소개령으로 해체했다가 1959년 중건했다. 1974년 혜명(慧明) 스님이 범종을 조성(달성서씨 문중원력)하고, 1981년 영오(靈悟) 스님이 불상을 개금했다. 1989년 수해로 무너진 것을 1990년 영오 스님이 법당과 심원각을 비롯해 향로전 등을 보수(신도회장 김두혁)했다. 1991년 영오(회장 김창년) 스님이 개금했다. 1999년 차도(車道)가 개통되고, 2001년 향로전과 심원각을 해체 보수 했다. 2013년 공양간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도들이 기억을 더듬어 최근 이절을 다녀가신 스님의 이름을 손꼽았다. 신도들은 “육락(六樂,1987)-성윤-보현-승헌(承憲)-선우(善友) 스님이 다녀가시고 혜정(慧靜) 스님이 2015년에 부임하셨다”고 말했다.

 

학가산 진월사 현판과 심원루
진월사에서 본 내성천과 미림마을

아름다운 절집 진월사

진월사는 태고의 멋을 간직한 절이다. 절이 자리한 곳을 멀리서 보면 흡사 학(鶴)이 내성천으로 내려앉는 형상을 하고 있어 필시 ‘명당 중 명당’이라고들 한다.

진월사 신도회 심국형 총무는 “절 앞 솔봉은 학의 머리, 절 양쪽을 감싸 안은 좌청룡 우백호능선은 학의 날개, 무량보전은 학의 심장”이라며 “심원루에 올라 안개 낀 내성천을 바라보면 구름을 타고 하늘위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림마을에 사는 권태학(73) 씨는 “진월사 발아래에 있는 용혈폭포는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미림(美林)’의 상징이 됐다”며 “선조들은 아침 냇가 물안개와 저녁 낙조에 일렁이는 버드나무의 풍경을 비롯하여 사계절 바뀌는 내성천의 모습들을 시로 남겼다”고 말했다.

서울 사는 40대 대학동창 여성 4명이 진월사를 찾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혜정스님과 가진 후 다음날 아침 “… 구름 속에서 아침식사 참 맛있고! 멋지다!”고 글을 남겼다.

 

좌로부터 민태식 신도, 노주식 회장, 혜정스님, 권영박 부회장, 조진국 신도
운포구곡 중 4곡 전담(箭潭,용혈폭포)

진월사 아래 운포구곡

진월사 아래 내성천이 흐른다. 옛 선비들은 경치가 빼어난 9곳을 정해 ‘운포구곡(雲浦九曲)’을 경영했다. 진월사 신도 민태식(71) 씨의 안내로 운포구곡을 둘러봤다.

민 씨는 “장태홍(평은출신) 선생이 쓴 ‘운포구곡 산수경승’에 보면, 무섬의 옛 이름을 섬계(剡溪)라 했는데 섬계에서 내성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1곡에서 9곡까지 정했다. 그 중 2곡 송사(松沙,미림남쪽 300m), 3곡 용추(龍湫,직곡계곡), 4곡 전담(箭潭,용혈폭포)이 진월사 지근에 있다. 2곡 송사는 송림이 무성하고 금모래가 무한하다. 3곡 용추는 용혈에서 폭포가 쏟아져 장관이다. 4곡 전담은 화살 전(箭)자에서 보듯 유속이 급해 소(沼)를 이루니 절경이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선비들이 남긴 진월사 詩

진월사는 옛 선비들이 시회를 열던 곳이기도 하다. 진월사 신도 조진극(68) 씨로부터 한시 몇 편을 전달받았다. 조 씨는 “이 시는 금광마을 출신으로 1669(숙종25)년 문과에 급제하여 양산군수를 지낸 석문(石門) 장후상(張后相,1677-1743,인동인) 선생이 진월사 시회(詩會)에서 지은 시를 공의 문집 석문시고(石門詩稿)에서 발췌한 것”이라고 했다.

陳月寺在最古巒(진월사재최고만) 진월사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 위에 있는데, 夜半鐘聲落斗間(야반종성락후간) 한 밤에 울리는 종소리는 북두성 사이로 퍼지네. 樓上四時皆是景(루상사시개시경) 루 위에서 본 사시절의 경치는 모두 이와 같은데, 眼中千疊此河山(안중천첩차하산) 눈 앞에 펼쳐진 천 겹의 아름다운 산은 어떤 산인가. 晴沙練白鷗眼穩(청사련백구안온) 깨끗한 모래 위의 흰 갈매기 한가히 졸고 있는데, 夏木陰靑鳥夢寒(하목음청조몽한) 여름날 푸른 나무 그늘 속에 산새들 꿈 차가우네. 猶有少年山水樂(유유소년산수요) 어릴 때 느끼던 산수 경치의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 淹留旬月却忘還(엄유순월각몽환) 달포가량 오래 머물러 돌아감도 잊어버렸네.

 

동지팥죽 새알빚는 보살들

진월사 심원루에 올라

기자가 동지 전날인 구랍 21일 진월사에 갔다. 향로전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정겹다. 공양간에는 보살님 20여명이 동지팥죽 새알을 빚고 있고, 처사님들은 땔감을 모아 준비한다. 유호순(72,직곡) 보살은 “오늘은 동지예불 준비와 동짓날 신도님들과 나눌 팥죽 300인분을 준비하고 있다”며 “내일은 많은 신도님들이 오셔서 예불을 드리고, 스님의 법문도 듣는다”고 말했다. 향로전 종무소에 들러 혜정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스님의 안내로 노주식 신도회장, 권영박 부회장, 민태식 신도, 조진극 신도와 함께 심원루에 올라 태소백 천 겹 풍광을 조망했다. 혜정 스님은 루에 올라 “‘심원루’ 현판은 현봉(玄峰) 근일(勤日) 스님께서 쓰셨고, ‘학가산 진월사’ 현판은 석당(石堂) 김종호(金宗鎬) 선생께서 쓰셨다”며 “진월사는 서북으로 소백 연봉들을, 동북으로 태백 연봉들을 마주하고 있다”고 했다.

노주식(75) 회장이 기자에게 귀띔해 준다 “혜정 스님은 동국대불교대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으시고, 대학원 강의, 종단 중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여기로 오신 신세대 박사 스님”이라며 “예불, 법문, 전산행정, 신도관리 등 모든 종무를 현대에 맞게 선도적으로 수행하신다”고 말했다. 이튿날 동짓날은 신도 150명이 모여 예불을 올리고 법문을 들었다.

권영박(72) 부회장은 “혜정 스님은 동지 법문에서 ‘찬(寒) 기운이 땅 속에 가득한 절기가 동지다. 이때부터 모든 생명체들이 봄을 준비하듯 우리들의 기도의 봄도 동짓날부터다...-하략-’고 말씀하셨다”면서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즉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는 말씀도 하셨다”고 전했다. 장중덕(금광2리 이장) 신도는 “무량보전에서 내성천을 내려다보면 심원루 지붕너머로 영주댐이 보이고 겹겹 봉우리가 장관”이라며 “단 하나 흠이 있다면 ‘심원루 앞 학(鶴)의 목 부위에 전봇대 2대가 꽂혀 있어 미관상 풍수지리상 장애물이다. 관계기관에 건의하여 지하매설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