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봉 동자삼 전설의 배경마을 ‘옥동’ | ||||
우리마을탐방[120]풍기읍 전구2리 옥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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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명씨 부사공파 150년 세거지 풍기읍 옥동 가는 길 과수원 사이로 400m 쯤 가다보면 도로 우측에 ‘살기좋은 마을 옥동’이라고 새긴 큼직한 표석이 나타난다. 여기서 오르막길 100여m 올라가면 느티나무 쉼터와 노인회관이 있고 그 뒤로 띄엄띄엄 집들이 있다. 지난 1일 오전 옥동에 갔다. 노인회관에서 명재기 노인회장의 주선으로 마을 어르신 여러분을 만나 옥동의 유래와 전설을 듣고 왔다.
마을의 역사 그 후 1896년(고종33)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순흥군 창락면 전고리가 되었다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풍기면 전구2리가 되었고, 1995년 영주시 풍기읍 전구2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명 유래 뒷산 봉우리에 옥녀라는 선녀가 내려와 바위 위에서 베를 짯다고 하여 그 바위를 베틀바위라 하고, 그 산봉우리를 옥녀봉(玉女峰)이라 부른다. 그리고 옥녀봉 아래에 마을이 있다하여 ‘옥동’이라고 부르게 됐다. 언제부터 옥동이라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송지향 선생의 도솔봉 탐사기(1940)에 옥동으로 나오는 것으로 봐서 조선 중기무렵부터 옥동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마을 김덕근(78)씨는 “지금은 전구2동이라 부르지만 6-70대 어른들은 ‘옥동’이 더 정겹고 익숙하다”며 “마을 뒷산을 자세히 보면 여성(女性)을 닮아 ‘옥녀봉’이라 부르고 있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그 모습이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도솔봉 동자삼 전설 이 마을에 사는 한 농부가 동자삼의 비밀을 알아차리고 마을 앞 느티나무 쉼터에서 동자삼을 만나 산삼을 캘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동자삼은 “도솔봉 산삼밭에 오면 가장 큰 산삼이 동자삼 나다. 그러니 동자삼은 뽑지 말고 다른 산삼은 마음대로 캐가라”고 했다. 이튿날 산삼밭에 도착한 농부는 동자삼의 부탁을 저버리고 가장 큰 동자삼을 힘껏 당겼다. 하지만 산삼은 뽑히지 않고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더니 그 많던 산삼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혼비백산 마을로 내려온 욕심 많은 농부는 끝내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욕심을 버리고 착하게 살라’는 교훈이 담긴 선조들의 이야기다.
연안명씨 집성촌 전구동의 연안명씨는 부사공파(副使公派) 21세손 명제만(明濟萬, 1838년생)이 조선 말 철종 무렵 평안북도 영변에서 가족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이주하여 입향조가 됐다. 후손 명재기(78)씨는 “저의 증조부(濟萬)님이 장성하여 이곳으로 이거하셨다면 아마도 1860년경으로 추정된다”며 “당시 다래덤불을 걷어내고 토담집을 짓고, 험한 돌산을 개간하여 논밭을 만드셨다는 이야기를 고모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제만의 후손들은 1960년대에는 20여 가구로 늘어났으나 산업화 이후 대부분 도시로 떠났다고 한다. 이 마을 명재기 노인회장과 명재철 이장은 제만의 증손이다. 송지향 선생이 본 십리반석 십리반석은 계곡 전체가 한 덩이 반석으로 연결되어 있다. 창울한 숲 속으로 맑은 물이 바위를 타고 내다르며, 혹은 푸른 못으로 변하고 혹은 폭포가 되었다가 이름 모를 새소리와 함께 흐르니 사바의 번뇌를 씻어주는 듯하다」라고 적었다.
심마니와 송마니 “산삼캐는 사람을 ‘심마니’라 하고 송이 채취하는 사람을 ‘송마니’라 한다”고 어느 원로가 농 삼아 말했다. 올해는 송이풍년이라고 한다. 옥동 송마니를 만나기 위해 도솔계곡으로 올라갔다. 십리반석으로 가는 계곡에 접어드니 골이 깊고 산은 높아 대낮에도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하다. 더군다나 송이를 지키는 진돗개 다섯마리가 으르릉거리며 짖어대니 오금이 저리다. 마침 국립공원사무소 직원의 안내로 송이집하장까지 올라갔다. 송이 채취 현장에서 만난 명재철 이장은 “도솔봉 송이는 백두대간 송이 중 향이 좋기로 으뜸”이라며 “새벽 5시에 출발하여 송이밭에 올라가서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채취하고 3시경 집하장에 도착한다. 올해는 하루 약 30키로(300만원)씩 채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옥동마을 사람들 제일 연세가 높으신 김정순(88) 할머니는 “도솔봉은 돌산이고 험준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많다”며 “오염되지 않은 옥계청류가 마을 앞으로 흘러 옥동은 산좋고 물좋고 공기좋은 살기좋은 마을”이라고 말했다. 권순옥(83) 할머니는 “예전에는 논이 적고 쌀이 귀했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 때 통일벼가 나와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순희 할머니는 “지금 옥동은 100% 사과농사만 짓고 산다”며 “도솔봉 중턱에서 맑은 공기와 햇볕을 먹고 익은 옥동사과는 빛깔 좋고 맛도 좋다”고 했다. “옥동에 전통음식이 있으냐?”는 물음에 김광순(80) 할머니는 “보릿고개 때는 수제비, 칼국수, 보리개떡을 많이 먹었지. 아주 옛날부터 해마다 여름이면 염소탕을 먹는 게 전통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도솔봉을 여러 번 올랐다는 이금해(여, 76)씨는 “옥동계곡 십리반석을 지나 흰밴장-안너리-말망아지등으로 오르는 길은 바위틈 사이를 기어올라야하기 때문에 심마니가 아니면 오르기 힘든다”며 “그 바위틈에서 산삼, 토종꿀, 석이버섯, 더덕, 당귀 등 귀한 보물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북청에 살다가 1947년 부모님 따라 38선을 넘어 월남했다는 김덕근(당시 8살) 전 노인회장은 “6·25 전 월남하여 단양 등 여러 곳에서 살다가 1988년 옥동에 정착했다”며 “옥동은 참으로 살기좋은 대한민국 힐링마을 중 하나”라고 말했다.
▲명재철 이장
▲명재기 노인회장
▲김덕근 전 노인회장
▲김석홍 노인회총무
▲김정순 할머니 ▲권순옥 할머니 ▲김순희 할머니
▲김광순 할머니 ▲이금해 씨 ▲이송자 씨
옥동마을 전경
마을 회관
옥동 사람들
십리반석
옥동 사과
옥동 송이
도솔봉과 옥동마을
옥녀봉
도솔봉 가는 길
이원식 시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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