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산서원 봄향사/조상과 후손의 연결고리 제례
경북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에 있는 의산서원에서
임진년 춘계향사가 2012.4.6(금) 11:00 엄숙 봉행됐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혈통과 뿌리를 중시하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찾아
보다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 가운데 제례처럼
범국민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오늘날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어 전통문화가 점차 축소되거나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조상들에 대한 제례만큼은 생명력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전승되고 있다. 이는 한국인에게 있어 제례는 단순한 전통문화가 아니라
그 이상의 각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제례에 깃들어 있는
조상과 후손이라는 혈통적 연결고리일 것이다.
의산서원의 제례도 시대변화에 따라 간소화가 요구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 오고 있다. 앞으로 적절한 형식의 개선을 통해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전통으로 영구히 이어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의산서원 전경
의산서원 가는 길 |
영주에서 예천으로 통하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따라 가다가 영주IC 출구에서 내려 예천방향 국도에서 곧바로 우회전하여 성곡(城谷) 방향으로 4km 가면 성곡저수지 아래 나지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동네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경주이씨가 400여 년을 세거해 온 갈미마을이다. 갈미마을은 용암산에서 떨어진 줄기가 동남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매봉산을 일으키고 남으로 틀어 마을의 진산을 이루고, 동으로는 멀리 연화산이, 남으로는 주마산이 마치 성곽처럼 에워싼 가운데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갈미마을은 성오당 이개립이 마을에 터를 잡으면서 형성되었다. |
성오당 이개립을 모신 서원 |
의산서원은 성오당(省吾堂) 이개립(李介立, 1544~1625)을 모신 서원으로 1610년(광해군 2) 마을 사림들이 군수에게 주청하여 의산서당을 창건하였다. 1664년 묘우를 건립하여 성오당 이개립의 위패를 봉안하고 절효사(節孝祠)라고 하였다. 1679년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를 배향하고 서원으로 승격시켰다.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근래에 다시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건축구성 |
의산서원은 동으로 문수산과 청량산, 남으로 학가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마을 산자락 끝에 남서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토석담장을 돌린 장방형 일곽 안에 양졸당·의산서당·내삼문·사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각 건물은 조금씩 비켜 앉아 있다. 의산서원 좌측에는 계림군(鷄林君) 이흥상(李興商)과 성오당 이개립의 묘를 수호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사인 석종재(石宗齋)가 있다. |
성오당 이개립 선생
성명:이개립(李介立) , 1546년(명종 1)년 ~ 1625년(인조 3)년
본관:경주(慶州), 자:대중(大仲), 호:성오당(省吾堂) ,출생지:용궁현(龍宮縣) 대죽리(大竹里)
출신지:영천(榮川), 분묘지:영천군(榮川郡) 서석(西石), 입사경로:천거(1586)
관직:산음 현감(山陰縣監), 증직: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 병조 참판(兵曹參判)
성오당 선생과 장인 장모 등 처가 가족 묘역
(이 곳은 처가가 있던 곳으로 성오당 보다 먼저 돌아가신 장인 장모와 처가댁 가족을 장사 지냈고
그 후 성오당이 졸하자 여기에 모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사연이 재미를 더한다)
시도(접수)
분정(제례 업무 분담)
집사 분정 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