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입국(박정희 대통령의 눈물)
고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
최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눈물’이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성세대의 땀과 노력,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일화를 담은
이 글에 20, 30대 네티즌들은 ‘우리 세대의 가벼움을 반성하게 됐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며 공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 글은 육군사관학교의 김충배 교장이 지난해 11월 생도 교육에 사용해
그동안 ‘육사교장의 편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 작성자는 예비역 장성인 김유복(金遺腹·79)씨.
그가 지난해 6월 로터리코리아(한국로터리의 기관지)에
기고한 글은 “60대를 수구 골통이라 몰아붙이는 젊은이들이여!
이 글을 읽어 보렴”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읽어 보니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이 있어 올려본다.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하나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였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하여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됐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 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우리들 신,구 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 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남부남34동 카페에서 퍼옴(2011.4.19)
---------------------------------------------------------------------------------------
학국일보
사설,칼럼
유영숙/학국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21일은 제44회'과학의 날'이다. 숙명처럼 여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방책으로 과학기술을 선택하고 '과학의 날'을 공표한 1968년, 국민소득은 100달러도 안 돼 세계 꼴찌 수준이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만에 기적같이 산업화에 성공했고 GDP는 238배, 수출액은 무려 1만 3,200배로 증가했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은 지금 철강 자동차 반도체 조선 산업에서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이 눈부신 성장에 지렛대 역할을 한 과학기술의 공헌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1966년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되었다. 당시 과학기술자들은 참으로 열심이었다. 대학교수의 3 배에 달하는 연봉 등 파격적인 대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정치지도자의 의지와 전폭적 지원, 연구 자율성의 보장이 밑거름이었다. KIST는 설립 이후 2003년까지 55조원의 경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KIST는 대한민국이 무엇으로 먹고 살아가야 할지 주력 산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싱크 탱크 역할을 했다. 포항제철 건설계획을 만들고, 현대 조선소 설립 토의를 주도한 것도 과학기술자들이었다. 1세대 전(全)전자 교환기, 컬러TV, 폴리에스터 필름, 반도체 웨이퍼, 광섬유 등의 국산화와 산업용 기초기술 개발을 위해 밤을 지새웠다. 이제는 많은 개발도상국 관계자들이 한국의 비약적 성장 비결을 배우고 싶다며 KIST를 찾아오고 있다.
선진국 진입을 눈 앞에 둔 지금 과학기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미래 성장동력인 바이오 산업은 기초과학 연구 결과가 고부가 가치 신약개발로 직결된다. IT, 지능형 로봇, 2차 전지 자동차 등도 미래의 국부 창출을 결정짓는 기술이다. 우리는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 기반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둘째, 정치에서 독립된 자율성과 순수성의 보장이다. 최근 과학비지니스벨트 입지 논란은 편협한 지역이기주의와 정치적 이해타산 싸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계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셋째, 중장기적 안목이다. 반 세기 전, 정치지도자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넓은 안목과 인내가 경이로운 성장을 견인하였다. 그런 자세로, 새로 출범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전폭적이고 실질적인 권한을 줘야 한다.
넷째,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과학기술계와 정부는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성과를 더욱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노력을 기울여 미래를 위한 투자에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올해 '과학의 날' 기념식에는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으면 한다. 바로 우리의 자라는 후손들이다. 과학자와 정치지도자, 국민이 함께 지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후손들을 위한 긴 안목의 과학기술 진흥을 다시 생각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눈 앞의 이해득실을 떠나 우리 후손들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머리를 맞대기를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