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혼/자랑스런 우리 역사

연평도 포격과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애국심

단산사람 2011. 1. 29. 21:15

namsan님의 글을 퍼옴

<연평도 포탄은 20대를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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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탄은 20대를 쏘았다."
연평도 사건 이후
자칭 진보신문이라고 하는 한겨레신문의 제목이다.
그렇다.
십수 년 동안 전교조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20대의 친북/진보 세뇌교육이
북괴의 연평도 포탄으로 한 방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아래의 막대그래프를 보면 연평도 포탄으로 인한
20대의 변화가 얼마나 극적인지 알 수 있다.
누구도 전교조 교사들에게 세뇌당한 20대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을 것이다.
연평도 피폭 이후,  12월의 해병대 모집에 
488명이 지원해 3.57 1의 경쟁률을 보였다.
3 26일의 천안함 사건 이후 4월의 지원 경쟁률이
1.8 1 이었으니까 얼마나 엄청난 차이인지 알 것이다. 1206270143005.jpg  
해병대 수색대.
해병 중의 해병이 바로 이 수색대이다.
세기로 유명한 해병 수색대에는 11명 모집에 231명이나 지원했다.
무려 20 1이 넘다니...
심지어는 해병대 지원율이 서울대 지원율 보다 높다고도 한다.
연평도 도발로 인한 20대 젊은이들의 오기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아래는 해병대 지원자들의 말.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 나의 도전 정신을 자극했다. 피하고 싶지 않다’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로 나와 같은 동년배가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북한의 실체를 한번 더 생각하게 됐다’


‘민간인을 향해서도 도발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어떻게든 내가 나라를 지키는 데 기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해병대 인사관계자)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한 뒤 부모님이 걱정했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봤는데 변함이 없었다. 나는 나라에 대한 충성심에 불타는 사람은 아니다
.
처음에는 군대에 편히 가고 싶어서 카투사를 지원했다가 되지 않았다
.
그러다 기왕에 해병대에 갈 거라면 힘들다고 소문난 수색병과에 지원하고 싶었다
.
연평도 사건은 잠깐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지만 오히려 지원 의사는 확고해졌다.

-
최준식(19·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1 / 중앙일보)

이글은 아래블로그에서 복사해 왔습니다.

http://blog.daum.net/ymjun0129/5233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