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안중근 의사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이 도도하게 흘러가던 역사, 즉 시간의 흐름을 멈춰 세운 인물이다. 모든 사람이 목숨에 연연할 때 안 의사는 목숨을 초개와 같이 민족의 제단 앞에 내놓았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일본이 침략전쟁을 전개하여 전 아시아를 제국주의 발 밑에 놓는데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다. 안 의사가 권총 한 자루로 시간을 멈췄고 결국 일본의 멸망을 가져왔다. 재판과정에서 판·검사들이 안중근을 회유했다. 특별열차로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싣고 와서 보여주며 “네가 미쳐서 그런 짓을 했다고 해라. 이토 히로부미를 잘 몰라서 그랬다고 해라. 그러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했다.
그러나 안 의사는 “너희는 열 번 죽어도 한국 사람을 모른다. 나는 독립군 대장으로서 우리나라와 아시아의 평화를 유린한 이토를 처형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고 진실의 힘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일본인 간수 치바 쥬시치(千葉十七)도 그를 존경해 “곧 당신이 사형 당한다. 그 전에 글 하나만 써 달라.”고 요청했다. 안중근 의사는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란 글을 단숨에 써주었다.
▲ 여순감옥에서 의거 직후 사진(출처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죽을 때까지 안 의사의 사진과 글을 소중히 간직했던 치바 간수는 그때 일에 대해 “너무 자신만 생각했다.”는 후회를 했다. 보통 사형수들이 취조를 받으러 갈 때는 걸어가도 사형장으로 방향을 틀면 의식을 놓고 거의 끌려가다시피 몸을 가누지 못한다. 보통 인간은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안중근은 당당했다. 단군의 자손 중에 위대한 인물이 나온 것이다.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신념을 지킨 신인(神人)이다.
목숨을 걸 일, 그런 가치를 발견한 사람만이 시간과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다. 사람이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 되려면 깨달아야 한다. 신인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신인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신의 의식을 가진 사람, 최고의 완성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