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학교 이야기/산과 바다 그리고 섬

백두산 가는 길(3)/광개토대왕비와 능, 장수왕릉

단산사람 2012. 7. 8. 22:01

 

  백두간 가는 길 4일차(2012.7.3) 

백두산 천지를 보고와서 그런지 기분이 붕뜬다.

저녁에 진사 서이서 소수 한 병 나누면서 이날을 축하했다.

12시 경 잠자리에 들어 아침 6시에 일어나 산책을 했다. 친구 석과 숲길 100여m 걸어서 나가니

광장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체조, 무술, 댄스를 즐기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고 살펴보니 '항일독립투쟁박물관광장'이었다.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다니까 비가 후둑후둑 내려 뛰어서 호텔로 가서 아침 식사를 했다.

7시 30분 호텔을 떠나 집안으로 향했다.

통화시를 벗어나 산간지방으로 접어들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었다.

옛날 광개토대왕이 군사를 이끌고 이길을 통해 요동으로 진격해 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이길은 역사의  길이요 귀한 답사의 길이 되었으니 참으로 뜻깊다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우리나라 강원도 산간 국도와 비슷한 길로 산촌의 풍경을 골고루 조망하며 갈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볼일이 급한 사람이 있으면 그냥 길가에 차를 세우고 볼일을 볼 수 있으니 좋게 보면 편리하다 할 수 있다.  

차창 밖 산간의 풍경은 중국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맞배지붕 붉은 기와집에 옥수수밭이 대부분이고

벼농사, 오미자농장, 깨, 장뇌삼포 등이 관찰됐는데 농로가 없고 경운기 등 농기계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모두 수작업으로 농사를 짓는 것 같다.   

큰 재를 넘으니 바로 집안이다.

고구려 두 번째 수도 국내성이 있던 집안, 생각할 수록 가슴이 벅차다.

도착하자마자 광개토대왕비가 우리를 맞이한다.

 

   

중국 길림성 집안시 통구에는 높이가 6.39m나 되는 거대한 바위 모양의 비석이 있다.

이것이 414년에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광개토대왕릉비이다.

고구려의 건국과 광개토 대왕의 영토 확장, 치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이 비석은 잊혀졌다가 12세기에 여진족이 금을 세운 뒤 금나라의 시조비로 여겨져 왔다.

그러다 17세기에 여진족이 청나라를  세워 중국 대륙을 지배하면서

이 일대를 나라의 발상지라 하여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면서 또 잊혀지게 된다.

1880년경 거주금지 조치가 풀린 뒤 한 농부가 발견하여 관아에 신고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일본과 중국은 경쟁적으로 비문의 내용을 밝히기 위해 탁본 작업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끼를 제거하기 위해 불을 지르거나 석회를 발라 글자들이 마모되기도 했다.

바위의 4면에는 1775자가 씌어 있는데, 이 중 140여 글자를 알아볼 수가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비문의 해석을 두고 자기 나라에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어,

한중일 사이에 논란이 분분하다.

한편 광개토 대왕의 시호는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다는 의미가 담긴'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이다.

그래서 광개토대왕릉비도 시호 세 글자를 본떠서 '호태왕비'라고도 한다.

 

고구려는 주몽, 즉 동명왕이 졸본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건국한 뒤로 여러 번 천도했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옮긴 것을 빼면 유리왕 때 졸본에서 국내성,

장수왕때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고구려의 도읍지 위치에 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첫 도읍인

졸본은 중국 랴오닝성 환런현 일대, 두 번째 도읍인 국내성은 중국 길림성 집안시 일대,

평양성은 대동강가인 평양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집안시 외곽/오토짐발이, 길건너 대포집

 

 

 통화-집안/산촌 풍경

 

 철도 건널목/양방향 정차

 

 

 일제 때 놓은 만주 철도 

 

 

 

 

 광개토왕비

 

 

 답사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마모 방지를 위해 비각이 세워져 있다.

고마운 일이다.

 

 

 비각 외부에서만 촬영할 수 있고 내부에서는 촬영 금지

 

 

 왕개토대왕비 앞에서 기념 사진

 

 

 오랜 세월 풍화 속에 글자가 희미히다

 

 

 태왕릉 표지석

 

 

 태왕릉 가는길/태왕살구 파는 아지매/2,000원 주고 한 그릇 사먹었다. 

 

 

 광개토대왕릉

 

 

 답사행렬

 

 

 큰돌은 능이 밀려나가지 말라고 받쳐놓은 받침돌

 

 

 철문 안에 관을 모신 자리 두개가 있음

발굴된 유물은 박물관에 있다고 함

 

 

 무덤을 쌓아올린 자갈과 돌

그당시 이정도 능을 쌓으려면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국력을 짐작할 수 있음

 

 

 관을 안치한 위치가 중간이라고 하니 실제는 현재보다 높았을 것으로 추정

 

 

 

장군총/장수왕릉

 

 

버팀돌

 

 

 

돌홈/돌과 돌사이에 홈을 파서 맞물리게 하여 밀리지 않게 축조

 

 

 

돌에 홈을파서 돌과돌이 맞물리게 하여 쌓아올림

 

 

버팀돌/석축이 밖으로 밀리지 말라고 큰자연석을 눌림 

뒷부분에 버팀돌 1개가 소실되어 많이 허물어짐

 

 

수도 방어의 요지 환도산성과 적석묘

 

 

 북한 남포시 만포마을 주택 모습

 

 강남춘 식당 입구

 

 

남포마을 바라초는 초암

 

 

 강 건너는 북한의 남포시 만포마을

 만포마을 주변의 산도 모두 벌거숭이 산이다.

 

 

 

집안시  옛 국내성 성터/최근에 복원된 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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