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망봉]
*신라의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은 나라를 왕건에게 빼앗기고
천년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명산과 대찰을 찾아
제원군 백운면 방학리 궁뜰에 동경저라는 궁을 짓고 머물러 있었고
왕자인 마이태자는 신라를 회복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엄동설한에도
베옷 한벌 만을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소백산으로 들어와 이곳에 올라 멀리 옛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는 연유로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함 (단양군지)
*슬픔이 지금도 다가 옵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이태자
신라가 모든것이 오염이 되고 고려 왕건에게
천년사직을 받친 비운의왕 경순왕, 그의 아들 마이태자
*슬픔도 우리의 역사요 아픔도 우리의 역사 입니다
대간 산행 하면서 국망봉 슬픔과 아픔의 역사를
함께 느끼면서 우리의 정신을 다듬은 기회가 되길 .....
[소백산 고치령(고치재)]
국토지리원 자료에 古峙(옛 고개)로 기록 되어 있는
고치령을 양백지간(兩白之間) 또는 "고치재"로 부르기도 한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를 가로 지르는 고치령은 조선중엽 때 까지만 하더라도
죽령 다음으로 중요한 고개였던 것으로 보이나 세조에 의해 유배당한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던 이 곳 사람들의 노력이 발각되어 폐쇄되었다는 설도 있는 곳이다.
양백지간이라 하는 이 곳에는 영월로 유배된 단종과
순흥으로 유배된 금성대군(단종의 삼촌으로 단종의 복위를 꿈꾸다 사사당함)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라 하는데 전하여 내려오는 전설은 이렇다.
영월땅으로 유배되었던 단종이 어느 날 하얀 도포차림에 말을 타고 고치령을 넘어가고 있었다.
단종대왕에게 "어디를 가느냐" 물어보는 백성들에게 단종이 답하기를...
"태백산"에 놀러간다고 하였다. 이 날 오후 단종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단종의 혼백이 태백산으로 들어 태백의 산신이 되었고
그의 신하였던 금성대군은 소백의 산신이 되었다고 믿어왔던 사람들은 혼령이 되어 만나는
조카와 삼촌(단종은 금성대군의 조카이다)을 위해 양백지간인 고치재에다 산신각를 짓고
매년 정월14일에는 어김없이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
2011.8.13 울산 옥산산악회 cafe에서 담아옴
'행복한 학교 이야기 > 소백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흥과 풍기 (0) | 2011.12.31 |
---|---|
자락길 단풍길/달밭길 (0) | 2011.10.18 |
희방사 & 희방폭포 (0) | 2011.06.30 |
고치령아래의 대궐터? (0) | 2011.06.06 |
정상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 (0) | 2011.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