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학교 이야기/나 어릴 적 이야기

행갈 청년들의 의기(義氣)

단산사람 2009. 10. 4. 22:05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1949년 가을(10월 경으로 기억)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병산2리 행갈마을(60여호가 살았고 함)

 

어떤 사람이 마을 골목을 다니며 외쳤다.

 "마을 사람들 모이시오"

"국군이 왔어요"

국군이 왔다는 외침에 동네 사람들은 동네에서 제일큰집 사랑채로 모였다.

2-30 여명이 모였는 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총 맨 사람이 10 여명 서 있고 어떤 사람이 앞에 나와 공산주의 선전을 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 속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선듯 나서서 의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공산주의 선동과 찬양의 변이 한참 진행되던 중

"야! 잡아라" 하면서 마을 청년단장이 선동자를 덮쳤다.

마을 청년들도 모두 합심하여 이들을 제압하려고 했다.

그 때 총맨자가 마을 청년을 향해 총을 쐈다.

총맨자들은 도망가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총을 쐈다.

마을 사람이 총에 맞아 피을 흘리자 마을 청년들은 일제히 맨손으로 이들을 제압하고 무기를 빼았았다.

공산주의자(발갱이) 2명은 그 자리에서 죽고 나머지는 모두 도망갔다.

이 사건으로 마을 사람도 3명이 희생 됐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이 도착했다.

이튿날 국군 1개 대대가 주둔하며 마을 지켰고

마을 사람들은 이근 마을로 소개 시켰다.

그래서 행갈마을 사람들은 병산이나 새터마을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일어난  며칠 후

산속에 숨어있던 빨갱이들이 이 마을에 내려와 마을을 불질렀고

집과 낟가레가 모두 불에타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이 후 이 마을은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다.

 

그 당시 마을 청년단장은

일본군으로 남양군도 전쟁에 갔다 온 분으로 학식과 덕망이 높았고

마을 공부방에서 신지식과 글을 가르쳤다고 하니

참으로 의기 있는 청년이었다고 생각하면서 그 분의 공덕을 찾아 공분을 되새기도

본 받아야 겠다.   

 

 

2009.10.2(토) 14:30경 새터마을에서 행갈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그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분을 (81세)  만났다.

나는 그 분의 이야기를 30여분동안 실감나게 들었다.   

참으로 귀한 이야기를 들었다.

  

 

 새터 마을로 들어가는 길

 

 새터마을 경로당과 마을 회관

 

)

 아버지와 그 때 그 자리에 잇었던 청년 (지금은 81세)

 행갈서 이주해 와서 지금가지 살고 있는 집)

 

새터서 행갈로 넘어가는 고갯길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행갈마을 옛터

 행갈들

 농로 정리가 잘 된 행갈들

 

 병산쪽 행갈들

 세터에서 넘어 온 길

 

 행갈들 남에서 북쪽 방향(저 산넘어 질막)

 옛 마을이 있던 자리

 

 

 

 

의기(義氣):정의감에서 우러나오는 기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