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학교 이야기/나 어릴 적 이야기

나 태어난 젓돌마을

단산사람 2009. 10. 4. 21:11

나는 1949.4.10(3.20)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 705번지에서 태어났다.(당시 영주군)

마을에는 40 여 가구에 400여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가 농사를 짓고 살았고 초가집에 사립문이 이었다.

미을에 공동우물이 하나 있었는 데 동네 아낙들이 모두 이 물을 길어다 먹고 살았다.

그 당시까지만해도 신분의 격차가 뚜렷해 우리집안 사람들은 상전 대접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마을 나이드신분들도 우리 집안 아이들을 보고 "도련님"이라 부르며 예대했고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어도 어른들에게 하대했다고 한다. 

나의 증조부께서는 한의원 자격증을 가진 의원이었는 데 난리를 피해 이 곳에 와 살았다고 한다. 

그 당시(일제강점기) 영주군수로 추대할 만큼 이 지역의 지식인이었다고 한다.

 

2009.10. 2(토) 추석날

아버지와 젓돌마을 을 찾았다.

옛 모습은 전혀 찾을 길 없었으나 주변 지형지물을 기준으로 옛집을 찾았다.

그 자리에 작지만 아담한 양옥집이 들어 서 있었다.

 

옛집은 ㄷ 자 집인데 6,25 전 소개명령이 내려 아버지가 밤새 집을 뜯었더고 한다.

소개로 단산 장터에 가서 살다가

다시 젓돌 아랫채에 와 실다가 오르락 내르락 하다 6.25  맞았다고 한다.

 

 

 

단산면 소재지 전경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 멀리 젓돌마을이 보인다.

 잡초 덩쿨 속에 바위가 있다.

어릴적 명절날 할아버지와 동생하고(형식) 이길 따라 큰집에 가서 체례지내고 장터에 있는 우리집 차례지내고 다음에 옥대 작은집에가서 차례 지내고 했다.

   

 젓돌 할아버지 집 헛간 모습니다.

 

 헛간엔 헛간 잿간 뒷간이 있었다.

헛간은 농기구 창고, 잿간은 아궁이 재를 모아두었다가 거름으로 섰다. 뒷간은 화장실이다.

뒷간은 앞 뒤 두개가 있었다. 앞에는 아이들꺼, 뒤에는 아른들 사용

해성 아재와 앞뒤에서 볼일 보던 어릴적 생각이 난다.

  

 본채가 있던 자리

본채에는 안 마당이 있고 가마솥이 걸려있고

안방 뒷방 골방 사랑방 마루 부억이 있었다. 흙바닥 마당과 흙 부엌 바닥이었지만 깨끗이 쓸고 닦아 반질반질했던 집이었다.

젓돌 할머니는 참 단정하고 깨끗했고 밥을 참 맛있게 지으셨다.

내가 영주서 중고 다닐 때 걸어오다 할머니가 주신 밥 먹을 때 정말 꿀맛이었다.

또 춘희 고모가 있었다. 참 재주도 출중하고 독서도 많이하고 기계뜨게질(편물)도 잘 했었다.   

 

돌담골목길이 아직 남아있다.

저쪽 돌담안에 초가삼칸 영식이네 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가 내 태어난 집터 자리다.

ㄷ 자 형 초가집이 있었다고 한다. 안채와 아랫채 헛간채가 있었다 한다.

 

 아버지께서 주변 지형지물을 기준으로 옛집을 찾아냈다.

 

 여기는 옛 큰집 자리다.

어릴적 큰집에 가서 제사지고 음복 먹고하던 기억이 있다.

안채는 덩실 높았고 아랫채는 헛간을 지나 안으로 들어왔는데 가마솥과 증조할아버지 방이 있었다.

모두 초가집이었다.

  

 젓돌마을로 들어오는 길

 

옛 우물 터 자리를 아버지께서 바라보고 있다.

    

 젓돌할아버지 집 앞에서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

 

 우물터 자리/ 안 쪽은 윤길이네 집